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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자의 대표 인물로, 다산, 삼미 등의 호를 사용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 그는 인간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명언들을 남겼는데,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허물을 지적할 때 조심해야 하며,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 또한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존중하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행동을 요구해서는 안 되며, 타인에게 관대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다산 정약용
정약용(1762. 8. 5. ~ 1836. 4. 7.)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실학자의 대표격 인물로 알려져 있다.
1762년[16] 경기도 광주부 초부면 마재리[17]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 송보(頌甫), 초자는 귀농(歸農), 호는 다산(茶山) · 삼미(三眉) · 여유당(與猶堂) · 사암(俟菴) · 자하도인(紫霞道人) · 탁옹(籜翁) · 태수(苔叟) · 문암일인(門巖逸人) · 철마산초(鐵馬山樵) 등이 있다.
모두가 각자의 전장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으니 비록 타인에게서 지옥을 마주할지라도 그에게 친절을 베풀라.
허물을 지적하는 말은 나의 잘못을 고백하듯 조심스럽게 해야 겨우 상대에게 닿는다.
내가 타인을 가늠하며 그 깊이를 평가하듯 남 또한 내 바닥을 들여다 보며 그 깊이를 평가한다.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 저울질한다면 나 또한 인간의 마음을 잃은 도구로 변할 것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애틋하게 여기고 익숙한 사이일수록 어려워하라.
모두에게 똑같은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나를 잃고 남을 잃는 길이니, 만장일치란 사람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수없이 많은 용서를 받았다. 그러니 타인에게도 관대하라.
사람을 만나는 가장 어른스러운 태도는 사람에 대해 미리 실망하지 않는 것이다.